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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여행

종로5가 버스정류장에서 벌어진 소동

by 땡큐도산 2025.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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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 종로5가의 버스전용차로 정류장. 하루에도 수백 대의 버스가 오가며 승객을 싣고 내리는 곳이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는 사람들이 몰려 정신없이 바쁜 곳이기도 하다. 
토요일 오후, 종로와 광화문 일대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대한 찬반 집회와 가두행진이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도로가 거의 마비되다시피 하여 버스전용차로에는 줄지어 있는 버스들이 끝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나는 버스를 몰고 종로5가 정류장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내 앞에는 몇 대의 버스가 정차를 기다리며 앞쪽에 있었고 뒷쪽에도 줄줄이 버스들이 수십대가 진입을 기다리고 있었다. 종로5가 버스전용차로 정류장은 100m정도로 길다. 앞쪽의 차들이 서서히 앞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었고, 맨 앞쪽까지 버스들이 다 빠져나가는 중이라 내가 운전하는 버스는 가장 앞쪽에 서게 되었다. 나는 정류장 표시선에 최대한 맞춰서 정차했고, 문을 열었다. 승객들이 차례로 타고 내리는데, 갑자기 한 60대 여성이 버스 계단을 오르면서 씩씩대기 시작했다.

"내가 손들어서 세워달라고 했는데, 왜 안 세워요?!"

나는 순간 당황했다. 평소에도 승객들 중에는 버스 기사들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사람이 있지만, 이렇게 첫 마디부터 격앙된 사람은 드물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여기 버스정류장에 세웠잖아요?"

"내가 손 들었는데, 왜 세우고 가요?!"

그제야 무슨 일인지 이해가 갔다. 이 여성은 정류장 뒤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가 앞쪽에 정차했기 때문에 몇 걸음 더 걸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정류장에 많은 사람들 서 있어서 아주머니 손 드는거 볼 수도 없었고, 앞쪽에 차들이 다 빠져나갔고, 중간에 버스를 세우면 뒤에 있는 버스들은 교차로 중간에 서서 차가 엉키게 돼서 교통이 마비가 돼요."

그러나 여성은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아니, 내가 손들어서 세워달라고 하면 나한테 맞춰서 세워야 하는 거 아니야? 왜 그냥 가냐고?! 이게 말이 돼?!"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사실 버스 기사로 일하다 보면 이런 상황이 종종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승객들은 조금 불편해도 이해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이 여성은 쉽게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승객들이 계속해서 타고 내리는 와중에도 여성은 문 앞에서 고함을 질렀다. 다른 승객들이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다시 한 번 설명했다.

"정류장에서 승객이 안전하게 타고 내릴 수 있도록 정차하는 게 우선입니다. "

하지만 여성은 오히려 더 흥분했다.

"세워달라고 손들면 세워야지 왜 그냥 지나가?! 당신 내가 회사에 전화할꺼야."
 
똑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화를 내는 여성에게 나도 화가 나서 버스 사이드브레이크를 채우고 "다른 분들께 죄송합니다. 저 분때문에 도저히 운행을 못하겠습니다. 손이 떨리고 심장이 벌렁거려서 운전을 못합니다." 운전석에서 내렸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운전석에 올라가며 "아주머니 저는 정류장에 분명 세웠습니다. 더 이상 소란을 피우시면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
"신고해! 나는 회사에 전화할꺼야! 당신, 회사 짤리기밖에 더하겠어?!"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는 게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다른 승객들의 안전과 원활한 운행을 위해 결단을 내려야 했다.

"손님, 경찰에 신고할테니 그대로 앉아계세요."

"그래! 신고해! 내가 이거 그냥 못 넘어가! 회사에 전화할꺼야"

나는 즉시 112에 신고했다. "종로5가 정류장에서 승객 한 분이 폭언과 버스 운행을 방해하며 소란을 피우고 있습니다."

주변 승객들은 점점 더 불편해했고, 몇몇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년 여성에게 한마디씩 했다.

"아줌마, 그냥 내려요. 우리도 바빠요. 왜 인생을 그따구로 살아요?"
"운전기사님이 뭘 잘못했어요?"

그러나 여성은 계속해서 버스 안에서 버티며 고함을 질렀다.
 
왠만하면 손님에게 사과하거나 말로 잘 해결하는 편인데, 처음으로 경찰에 연락을 하였다. 약 5분동안 종로5가에서부터 서대문까지 원래 집회로 마비되었던 버스전용차로는 완전히 멈춰버렸다. 뒷차 버스기사가 너무 막히는데 옆으로 버스를 빼는게 좋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고서 일단, 갓길로 빠져나와서 5분을 더 기다린 후쯤 근처에 있던 경찰이 도착했다. 경찰이 버스에 올라와 상황을 확인하더니 여성에게 말했다.

"더 이상 이 차에 타실 수 없습니다. 내리시죠"

여성은 곧바로 경찰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않고 고분고분하게 따라내렸다..

경찰은 나에게 말했다.

"기사님, 이제 아무 신경쓰지 마시고 안전운전하세요. 수고하십시오"

나는 경찰에게 "감사합니다" 인사했고, 승객들에게는 "죄송합니다. 출발하겠습니다" 말하고 운행을 이어갔다.


 그리고 출발하며 버스 안을 바라보니, 다른 승객들이 안도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혜화로에 내리는 여학생은 웃으며 "고생하셨습니다." 인사하며 내렸다. 
나 역시 웃으며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인사하고, 보문역에 내리는 여학생은 고생하셨다며 과자와 초코렛을 주며 내렸다. 
 

고생하셨다며 여학생이 과자와 초코렛을 주고 내렸다.


모든 승객들을 편하게 탑승시킬 수 있다면 나도 좋겠지만, 3시간을 넘는 운행시간동안 수 백명이 타고 내리는 데, 기사도 승객도 약간의 불편은 있을 수 있기에 서로 배려를 하면 좋겠지만, 본인이 조금 불편하다고 싸우려고 들고, 민원넣어서 기사에게 보복하여 감정해소를 하려는 승객들이 종종 있다. 
 

이런 일이 한두 번 있는 건 아니지만, 그날은 유독 피곤한 날이었다. 하지만 경찰이 신속하게 대응해 준 덕분에 더 큰 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나는 다시 운전에 집중하며, 무사히 운행을 마쳤다.
 
시국이 어수선하여 많은 사람들이 불편하고 지친 심신을 다른 누군가에게 해소하려고 악순환되듯 하면 안 될 일이다. 
기사들도 승객들도 서로 배려하는 대중교통 문화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근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 아줌마 몇 달전에 전화통화를 시끄럽게 계속해서 내가 "통화 좀 자제해 주세요~" 했더니 "할 말이 있으니까 하지. 요즘 버스기사들이 기고만장해서는..."

어이가 없이 교묘하게 이상한 논리로 기사들의 심리를 긁어대는 화법이 아무래도 이 아줌마 기사들에게 불만이 많은 듯하다. 그 때 그 아줌마가 맞는 것 같다.
몇마디 실랑이하다가 그 때는 회사에 전화하여 나는 배차실에 불려가게 만들었었다.
언제 또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제발 보지 맙시다.
먹고살기 힘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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